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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 유럽 연합 공공 부문의 미국 기술 플랫폼 사용 제한

최지환IT
유럽 정부 기관 회의실에서 자체 개발 협업 도구를 사용하는 공무원들의 모습을 표현한 AI 생성 일러스트 이미지
유럽 정부 기관 회의실에서 자체 개발 협업 도구를 사용하는 공무원들의 모습을 표현한 AI 생성 일러스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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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국가들은 오랜 기간 미국 기술 기업이 제공하는 소프트웨어와 클라우드 서비스에 의존해 왔다. 행정 업무, 내부 소통, 공공 데이터 관리까지 다수의 영역이 글로벌 기업의 플랫폼을 통해 이뤄지면서 효율성은 확보했으나, 그 이면에서는 데이터 통제권과 보안 문제에 대한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프랑스 정부가 공공 부문에서 줌, 마이크로소프트 팀즈, 구글 미트 등 미국산 화상 회의와 협업 도구 사용을 제한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며 유럽 전반의 기술 자립 논의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프랑스 정부의 결정은 단순한 소프트웨어 교체를 넘어 국가 행정 전반의 정보 흐름을 재정비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공공 기관에서 처리되는 문서, 회의 기록, 음성 및 영상 데이터는 행정 운영의 기반이 되는 정보다. 이러한 데이터가 외국 기업의 서버와 플랫폼을 통해 저장되고 관리될 경우, 법적 관할권과 정보 접근 가능성에 대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미국 클라우드 법은 미국 기업이 보유한 데이터에 대해 정부가 접근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를 포함하고 있어 유럽 국가들의 경계 대상이 돼 왔다.

프랑스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범부처 디지털 국인 디눔이 직접 설계하고 개발한 협업 플랫폼을 공공 부문에 도입할 예정이다. 이 플랫폼은 화상 회의, 메시지 전달, 문서 공유 기능을 포함하며, 정부 내부 요구 사항에 맞춰 설계된다. 외부 기업의 사업 전략이나 서비스 정책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고, 데이터 저장 위치와 접근 권한을 명확히 통제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한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활용 원칙을 유지함으로써 코드의 투명성과 보안 검증 가능성을 높이려는 방향을 유지하고 있다.

프랑스는 과거부터 공공 부문에서 오픈 소스 도입을 장려해 왔으며, 이는 특정 기업에 대한 종속을 줄이고 장기적인 비용 관리 측면에서도 효과가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번 조치는 이러한 정책 기조를 한층 강화한 사례로, 디지털 자주권을 국가 정책의 핵심 요소로 삼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디지털 자주권은 단순히 기술을 자체 개발한다는 의미를 넘어, 데이터와 시스템 운영에 대한 결정권을 스스로 확보하는 개념으로 이해된다.

이 같은 흐름은 프랑스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유럽 의회는 공공 조달 과정에서 가능하다면 유럽산 기술과 제품을 우선 채택하도록 권고하는 기술 주권 관련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공공 부문이 시장에서 갖는 구매력을 활용해 유럽 기술 기업의 성장 환경을 조성하려는 전략이다. 공공 기관이 안정적인 초기 수요를 제공하면 중소 기술 기업도 장기적인 연구와 서비스 개선에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확보할 수 있다.

유럽 연합이 기술 자립을 강조하는 또 다른 이유는 데이터 보호와 프라이버시 기준에 있다. 유럽은 일반 데이터 보호 규정인 지디피알을 통해 개인정보 처리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지디피알은 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의 약자로, 개인정보 수집과 이용, 저장 방식에 대해 명확한 책임을 요구하는 법 체계다. 이러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거나 법적 해석 차이가 발생할 경우, 해외 기업의 서비스 이용은 지속적인 법적 분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정책 입안자들은 핵심 디지털 인프라를 지역 내에서 관리 가능한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화하고 있다.

공공 부문이 먼저 유럽산 솔루션을 채택하는 전략은 산업 전반의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행정 시스템에서 검증된 기술은 민간 기업에도 확산될 수 있으며, 이는 유럽 기술 기업의 신뢰도와 경쟁력을 높이는 효과를 낳는다. 동시에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의 관계에서도 일방적 의존 구조에서 벗어나 보다 균형 잡힌 협력 관계를 모색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든다. 국제 디지털 표준 논의 과정에서도 자국 기술과 정책 경험을 바탕으로 한 발언권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프랑스와 유럽 연합의 이번 행보는 글로벌 기술 시장에서 기술 자립과 데이터 주권이 얼마나 중요한 정책 요소로 부상했는지를 보여준다. 특정 국가나 기업이 지배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다원화된 기술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시도는 향후 다른 지역과 국가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유럽은 공공 부문을 시작으로 민간 영역까지 점진적으로 기술 자립 범위를 확대하며, 지역 특성과 법 체계에 부합하는 디지털 경제 모델을 구축하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최지환

기술의 본질과 그 파급력을 깊이 있게 탐구하며, IT 산업 전반에 걸친 변화의 흐름을 날카롭게 짚어내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클라우드, 반도체, 사이버보안 등 빠르게 진화하는 분야에서 핵심 이슈를 선별하고, 일반 독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맥락을 갖춘 보도를 지향합니다. 기술 자체보다는 그것이 산업과 사회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관찰하고, 기업 전략, 기술 규제, 사용자 경험 등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합니다. 각종 기술 행사와 컨퍼런스를 직접 취재하며, 깊이 있는 분석과 균형 잡힌 시각으로 독자의 신뢰를 쌓아가고 있습니다.